[문화] Třebíč- 뜨제비츠

04/12/2020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체코

체코는 수도 프라하와 13개 광역시로 구성된다. 각 광역시 중 UNESCO에 등재된 도시가 없는 광역시가 더 적을 정도로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까를로비 바리와 인근 온천지대는 UNESCO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넥센타이어가 위치한 Žatec 지역은 홉 생산과 전통 맥주 제조와 관련된 역사적 건물과 자료를 토대로 UNESCO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체코는 갖은 풍파에도 문화유산들을 꿋꿋이 지켜왔다.

UNESCO에 등재된 대표적인 도시 프라하, 체스키 끄룸로브, 올로모우쯔 등은 이미 전 세계에 유명한 관광 도시다. 체코 여행을 다니며 한 번쯤, 혹은 이미 여러 번 방문했을 터다.

반면 Vysočina 광역시에 위치한 Telč, Žďár nad Sázavou, Třebíč는 UNESCO에 등재된 문화유산이 3곳이나 모여있는 보물창고 같은 지역이지만, 비교적 관심도가 낮은 편이다.


Třebíč

Vysočina 광역시는 보헤미아 지역과 모라비아 지역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우리에겐 조금 낯선 도시 Třebíč는 유대인과 카톨릭교인 간의 평화로운 일상이 어우러진 곳으로,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2003년 7월 3일, UNESCO에 등재된 Třebíč시의 유대인 지구와 묘지 그리고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바실리카 sv. Prokop을 살펴보자.

Bazilika sv. Prokop

Třebíč의 중심에 Jihlava 강이 흐르며 도시를 남과 북으로 가른다.

도시의 서북쪽, 도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다란 곳에 카톨릭 교인들의 삶을 대변하던 *bazilika sv. Prokop이 위치해 있다. 바실리카에 다가가기 위해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드나들던 수도원 정문을 지나야 한다. 외부 세상과 완벽히 단절하기 위해서인지 정문이 유난히 육중하다. 이 문을 지나야 수도원 중정에 들어설 수 있다.

중정 왼편에 위치한 bazilika sv. Prokop는 체코에서는 드물게 남아있는 온전한 형태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12세기 초, 베네딕트 수도사를 위한 수도원을 지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승천 예배당이 세워졌다.

13세기, Třebíč 교구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됨에 따라 수도원장은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여 예배당을 석조 건물로 재건축한다. 이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이 초기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변모한다.

1704년, 성인 Prokop의 시성식 500주년을 기념하여 로마네스크 -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bazilika sv. Prokop으로 거듭나게 된다.

바실리카 정문 앞쪽에는 외부로 툭 불거져 나온 사각형의 홀이 있다. 일반 교회 건축물들이 외벽에 바로 문을 터놓은 모습과는 다른, 이색적인 형태다. 외부 홀의 천장 중앙에서 7개의 볼트가 뻗어내려 온다. 볼트들이 사면의 중앙에 세워진 세 다발 기둥과 네 모서리로 그대로 이어지며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다. 홀의 내부는 첨두아치 모양인데, 이는 고딕 시대를 반영한다.

외부 홀의 아케이드 위쪽에 위치한 2층 갤러리 외벽은 기둥으로 중앙을 나눈 반원형 창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안의 중랑으로 이어지는 외부 홀인 이 곳만 살펴봐도 한눈에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함께 어우러졌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바실리카 대성당의 건축적 특징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시대를 나란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구 시대 의 유행 양식을 새 유행으로 가리거나 교체하는 대신, 두 양식을 적절히 결합한 화합의 공간인 셈이다.

Třebíč 유대인 지구

bazilika sv. Prokop에서 경사로를 따라 Jihlava 강 쪽으로 내려가자. 강을 건너기 직전, 왼편에 유대인지구가 있다.

Třebíč는 한때 Moravia 지역 유대 문화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약 120여 채의 아기자기한 유대인 가옥이 빼곡하고, 시나고그, 시청사, 정통 유대교 학교인 헤데르 등의 주요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대인 지구에 들어서면 골목길 양쪽으로 줄지은 가옥들이 눈에 띈다. 가옥들은 특이한 석조 버팀 구조물로 이어져 서로 지지한다. 마치 강 위에 놓인 다리처럼 층층이 이어졌다.

문짝처럼 커다란고 긴 창문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창문 외벽에는 갈고리처럼 생긴 말뚝이 박혀있기도 하다. 큰 창문을 열고, 이 고리를 이용해서 크고 무거운 물건들을 옮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유대인 지구는 Jihlava 강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마음에 드는 골목길을 누비는 재미가 쏠쏠한 구역이다. 맛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숨어 있다.

유대인 묘지

시나고그를 지나 언덕길로 올라가자. Třebíč 시나고그는 과거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후스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대인 지구를 벗어나 높은 언덕에 오르면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Třebíč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Kopce Hrádek 언덕 위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모던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전혀 다른 도시에 찾아온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다. 전원주택을 천천히 가로지르다 보면 계곡이 보이는데, 그 내리막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유대인 묘지가 있다.

유대인 묘지는 17세기에 형성되어 지금에 이른다. Třebíč 유대인 묘지는 현재까지도 유대인 전통에 따라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름답게 장식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란히 선 3천여 점의 묘비석이 보인다. 마치 거대한 도미노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Třebíč 유대인 묘지의 분위기는 프라하 구시가지의 유대인 묘지의 음산함과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체코의 시민 묘지처럼 알록달록한 꽃과 아름다운 조각상이 놓인 공원 같은 분위기도 아니다. 초록 빛깔 자연과 검은색 묘비석이 묘하게 싱그럽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묘지에 놓인 장식은 무덤 주변에 놓인 흰 조약돌 몇 개뿐이다.

흰 조약돌의 유래는 모세의 출애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활한 사막에서 이동생활을 하던 유대인이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주변의 돌멩이뿐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잊지 않았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인의 가족과 친구들이 무덤 가에 흰 조약돌을 올려 둔다. 간혹 돌멩이와 닮은 밤톨이 놓인 경우가 있지만 이는 유대인 전통이 아니다.

이 곳의 가장 오래된 무덤은 1631년에 만들어졌다. 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면, 근대에 세워진 비석과, 17-18세기에 세워진 비석들이 뚜렷이 구분된다. 오래된 비석들은 수백 년 간 내린 비와 바람에 풍화되어 글씨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닳아있다.

출처: 프라하일보